환우들의명저

굳은 손가락으로 쓰다 |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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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성고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이원규 박사가 치명적인 질환 ‘루게릭병’에 걸린 뒤 피와 눈물로 적어내려간 감동 에세이. 언어기능을 잃고, 전신 마비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루게릭병은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통해서,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를 통해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뚜렷한 치유법이 발견되지 않은 희귀질환이다. 이 병 앞에서도 이씨는 굴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노래한다. 발병 직후에도 그는 굳센 청년처럼 성균관대 박사과정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했고, 온 몸이 굳어가는 상황에서 그나마 힘을 줄 수 있는 굳은 손가락 하나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논문을 썼으며, 마침내 2004년 가을 성균관대 졸업생 대표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발병 이후 2~3년 내에 사망한다는 의학계의 정설과 달리 이씨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주변의 도움으로 6년째 너끈하게 삶을 버티며 루게릭병을 ‘즐기고 있다.’ 그에게는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눈부시다. 혀가 굳어 말을 하지 못하지만 그는 음성변환장치가 개발된다면 호킹 박사처럼 대학 강단에 다시 설 계획이다.



저자소개

1960년 충남 예산에서 1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삽교초교, 예산 오가초교, 보령 대남초교, 보령 대명중, 예산고를 거쳐 고려대 국문학과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향학열이 남달랐던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불문학과까지 수학했다. 또 한국외국어대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전공 석사과정,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 국문학전공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2004년에는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20여년 동안 모두 7개의 학위를 받았다.

1985년 3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20년간을 서울 혜화동 동성고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으며, 루게릭병 발병전까지는 3학년 담임을 9년이나 맡을 정도로 열정이 강한 선생이었다. 담임반 급훈은 늘 ‘이웃 사랑’이었고,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언제나 유머가 넘치고 자상했지만 ‘등교시간 지각’ ‘학생간 폭력행위’ ‘시험중 부정행위’만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아 학생들 사이에스는 ‘피바다’와 ‘람바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93년 박재삼 시인 추천으로 문예지에 ‘매미’ ‘강물이 어두워져’ 등의 시를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한...이후 ‘내일의 시’ 동인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루게릭병연구소’와 인터넷카페 ‘루게릭병 네트워크’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같은 루게릭병 환자들을 돕는 일에 열정적으로 나서고 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정기적으로 병문안, 환자가족을 위한 정기간담회도 마련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계속해서 ‘한국ALS협회’(http://www.kalsa.org)와 연계하여 루게릭병 홍보활동과 ‘중증장애인연금법’ 추진 등 장애인복지를 위해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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