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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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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희 작성일 09-03-13 20:33    조회 1,7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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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되었다고 반기던 시절이 어느새 해빙기를 지나고 개화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나는 그 동안 소설을 쓴다하고 게시판에는 글 올릴 생각도 못하고 지냈습니다.
어찌보면 소설을 완성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이곳에 글을 올리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 환우들이나 보호자분들과 공감하고 연대감을 갖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말 합니다. 루게릭을 15년 동안 앓았으면 이제 도를 틀 한마디쯤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일전에 '어디서든지 자유로워라' 라는 책을 보게되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자유롭기 위한 몇 가지 수행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사람처럼 숨을 깊이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라.
자유로운 사람처럼 걸어라.
자유로운 사람처런 음식을 먹어라.
자유로운 사람처럼 두 팔을 벌려라....
사실 루게릭 환자들에게는 이 어떤 것도 수행할 수 없는 수행 법이지만
그러나 또 어떤 의미에선 우리 환자들이나 가족들에게 가장 매력적이고 유혹이 되는 단어가 자유가 아닌가 합니다.
가장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가 자유의 수행법을 익힐 수 없다는 이 역설이 역설로만 끝날까요?
침상으로부터의 자유.
휠체어로부터의 자유.
운동 신경 장애로 부터의 자유.
환자로부터의 자유.
고통으로 부터의 자유.....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까요?
저 같은 경우는 어느 때 부터인가 루게릭을 끌어 안으면서 분노도 질병도 절망도 사그러짐을 체험했습니다.
얼마전부터 같이 투병하던 동지분들이 한분 한분 떠나시는 부음을 듣게 됩니다.
'삶도 죽음도 다 경이로운 기적일 뿐 입니다.' 라는 말을 작은 소리로 중얼거립니다.
아픔도 삶의 한 형태이고 고통도, 슬픔도, 삶의 일부일 뿐인데 뭐 그리 대수냐고... 울산바위가 금강산에 장수 바위에게 건네 듯 그렇게 말해봅니다.
마지막 한 숨까지 전력을 다해서 마지막 눈 깜빡임까지 전심을 다나타내시고
"다 마치셨습니다. 훌륭히 살으셨습니다. 이제 본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생사를 초월한 자유를 꿈꿔봅니다.
죽음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꿈꿔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일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땅위를 걷는 것이 기적일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앉아 있는 것이 기적일 것입니다.
말하는 것, 먹는 것, 대 소변의 감각...
들 꽃 한송이 역시 피었다 지는 것이 다 우주의 기적만 같습니다.
우리는 정상인들이 살아가는 것이 기적 같이 보이지만, 또 어찌보면 우리야 말로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세상이 온통 기적일진대 그 중에서 우리의 삶이야 말로 기적중에 기적입니다.
사랑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미소를 지읍시다.
오늘도 가장 큰 기적으로 존재하는 우리에게 아는 이름을 불러가며 큰 박수를 보냅니다.
"아름답습니다 당신이여. 잘 견디세요 사랑이여."
봄을 바라보며 단상을 적어봅니다.

루게릭 환자 이정희 침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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