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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희 작성일 10-11-03 14:21    조회 2,1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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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님이 장사익씨의 콘서트를 다녀왔다고 내게 CD 한장을 주셨다.
장사익의 1집 '찔레 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목놓아 울었죠.

발병 초기였던 1995년, 우리 부부는 치료를 받으러 이곳 저곳으로 정신없이 다녔다.
차 안에서 당시 자주 들었던 찔레꽃은, 꼭 우리 부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이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면 넋을 놓고 들었다. 그런데 1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또 다시 찔레꽃 이라니...

죽음이 내 눈앞에서 서서히 지나가기를 몇번. 37.3도와 37.5도 사이의 미열로 하루종일 진땀과 식은땀으로 허덕이는 나날.
침이 너무 많이 나와 어눌한 말 조차 점점 힘들게 하는 요즘.
낮은 소리로 음악 한 곡 듣고 책 몇장 읽으면 몸은 축축 늘어지고...

내 침상이 있는 우리집 거실 가득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금가루 은가루가 뿌려지고, 오색 풍선이 천장으로 올라가고. 파도타기라도 하듯 경쾌함과 흥겨움이 삽시간에 가득 채워졌다.
기타의 선율에 맞춰 흘러나오는 트롯트의 '열아홉살 순정'
    보기만하여도 울렁
    생각만하여도 울렁
   수줍은 열아홉살 움트는 첫사랑을 몰라주내요.
    세상에 그 누구도 다 모르게
    내 가슴 속에만 숨어 있는
    흥~음 내 가슴에 음~음 숨어있는
    장미꽃 보다도 붉은 열아홉 순정이래요

환갑연에 찾아온 열 아홉살 순정
"권사님. 볼륨 좀 크게 해주세요. 몇 번째 음악이예요?"

그날 나는 9번째 음악에 푹 빠졌다.
듣고 또 듣고

퇴근해서 들어오는 아들에게
"나 오늘 9번에 푹 빠졌어."
의아해하는 아들 옆에서 딸 아이가 설명을 해주었다.
'엄마 오늘 장사익씨가 부른 열 아홉 순정에 흠뻑 빠지셨어."
"그래? 그럼 나도 들어봐야지."
아들은 옷도 안 갈아입고 오디오로 가서 음악을 튼다.
그리고 내 앞에서 음악에 맞추어 양손을 펼치고 갈매기처럼 새 춤을 춘다.
아~ 참 경쾌하고 기분좋다.
오리 궁뎅이처럼 뒤뚱거리며 돌이 갓 지난 외손녀 연주가 같이 춤을 추다가 오디오 앞으로 가서 소리를 꺼버렸다.
"그래. 니가 열 아홉살 순정을 아직 알 수 없지......"
우리는 또 한바탕 웃으며 떠들어대었다.

이게 회춘인가? 아이 징그러.
내 나이 열아홉살 때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던 남자는 누구였었지?
조금 생각하다가 그것도 시들해지고 지금 내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는 순정에 마음이 쏠렸다.
줄기세포가 개발되어 루게릭이 정복되는 날.
나는 침상에서 상체를 세우고 두 다리를 스르륵 돌려 방바닥을 딛고 일어서겠지.
그도 아니면
그날이 되어 그 분 앞에 서서
"감사합니다. 루게릭 병을 잘 앓고 왔습니다."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 예수 앞에서 나는 가슴을 울렁거리며 열아홉살 순정을 노래 부르리.

참 오랫만에 글을 올리게 되어 기쁩니다.
환우 여러분 그리고 보호자분들,
볼륨을 크게 틀고 나와 함께 열아홉살 순정을 들어봅시다.
힘내시고 건강하십시요.

루게릭 환자 이정희 올림.

댓글목록

신현우님의 댓글

신현우 작성일

이정희선생님!
 반가워요^^+.
 저는 선생님을 잘 압니다. 지금은 인공호흡기 한지 벌써 6년이 넘었군요.
 그 당시 아저씨의 소식을 듣고 마음 속으로 무척이나 울었습니다.
 미안하지만 꼭 살아 남아서 좋은세상 오래동안 영유하시길 부탁합니다.
 추운겨울 잘 보내시고 부디 건강하세요. 화이팅^^+.
 환우 신현우 올림.